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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상같은 죽음
    일상같은 죽음 2010. 7. 12. 05:10

    결국

    보랴 아저씨는 돌아가셨다.

     

    오늘은 블라드의 생일.

     

    삶은 이렇게 돌고 돈다.

     

    아저씨의 영정 사진에 검은 리본을 두르면서

    말쑥한 아저씨의 얼굴은 처음 본다고 생각했다.

     

    살아 남아야 하는 가족들은

    당장 오늘이 지나면 쓸모 없어질 여름 농작물을 수확하고

    일을 하기 위해 밥을 먹고

    가슴을 치며 눈물을 훔친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보랴인 손자는

    오늘도 여전히 장난꾸러기라

    웃통을 벗어 젖히고 맨발로 놀러 나간다.

    제 할아버지를 쏙 닮아 씩 환하게 웃으면서.

     

    술에 만취한 아저씨가 차도를 향해 휘비적 휘비적 걸었고

    옆집 계집애는 빵을 사러 자전거를 타고 쌩 달려간다.

    알료나가 김치 담글 배추를 한 차나 실어 보낸다.

     

    나는

    보랴 아저씨 영정사진에 검은 리본을 둘렀다.
    나는

    블라드의 생일 카드 챙겼다.

    누군가 세상을 떠나 가족들이 슬픔에 눈물 짓고 있다고 해도

    태어난 것을 축복 받아야 할 사람은 축하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욕조에 물을 받고 거품을 풀고 목욕을 하고

    침대에 누워 네일 페인팅을 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유서를 쓴다.

     

    내가 세상을 떠나도 울지 말기를

    떠나는 나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언제 볼 수 있느냐 묻던 그대로

    떠돌던 내가 마침내 마음을 놓고 쉴 곳으로 간다고 생각해 주기를

    울지도 말고

    그냥 가끔 떠올리는 것처럼 살다가 한번쯤 떠올리겠다고

    그러나 그리워는 않겠다고 약속해 주기를

     

    어느 유명한 사람이 죽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하고 분개하고 울어주었다.

    화려했던 삶. 업적.

    그런 것 없는 사람이 죽었을 때

    적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하고 울어주었다.

     

    그렇지만 결국

    울던 그들도

    그 죽음 옆에서 일상을 살아가고

    그저 가끔 기억하며 가슴 아프다 할 뿐이겠지

     

    오늘도 내가 살아 낸 일상 속에는 죽음이 한 자락

    나는 오늘도 죽음 곁에서 살아간다.

    가냘픈 내 생명이 찬란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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