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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명
    일상같은 죽음 2010. 7. 8. 05:44

     

    resonance
    진동하는 계의 진폭이 급격하게 늘어남
    . 또는 그런 현상.
    외부에서 주기적으로 가하여지는 힘의 진동수가 진동하는 계
    고유의 진동수에 가까워질 때 일어난다
    . (연관단어 : 맞울림, 공진)

    sympathy
    남의 사상이나 감정
    , 행동 따위에 공감하여 자기도 그와 같이 따르려 함. (연관단어 : 껴울림)

     

    교회에서 가장 활기찬 사람. 그녀는 나타샤다.

    나타샤 아줌마가 오면 시끌벅적해지고 웃음소리가 폭풍처럼 쓸고 간다.

    교회의 온갖 된 일을 할 때 그녀는 항상 선두에 서있다.

    사람들이 꺼려하는 일도 그녀는 웃으면서 함께 하게 만들 수 있는 기운을 갖고 있다.

     

    오늘 그녀가 가슴에 손을 모으고 눈물 한 방울을 훔친다.

    그녀의 철딱서니 아들이 자기 팔에 얼굴을 묻고 숨을 죽여 눈물 한 방울을 훔친다.

    그녀의 눈물이 공기를 가로질러 울려 그 진동에 눈물이 같이 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눈물을 한 방울씩 훔친다.

    공명.

     

    너무 너무 더워 잠을 이룰 수 없던 밤에 보랴 아저씨는 깊은 잠에 빠졌다.

     

    보랴 아저씨. 나타샤 아줌마의 남편.

    멋진 콧수염과 술통만큼 불뚝한 배, 감은 듯 보이는 실눈.

    셔츠의 단추는 꼭 다 풀어헤치고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느릿느릿 걷는다
    .

    깊은 우물에 대고 말하면 돌아오는 메아리 같은 굵고 낮은 웅얼거리는 목소리.

    빨간 머리 앤의 매슈 아저씨를 꼭 닮으신 딱 우크라이나 시골 아저씨의 전형.


    아줌마가 목에 핸드폰을 멋지게 걸고 자전거를 끌고 씽~ 어디론가 볼일을 보러 가면

    집에서 밥하고 반찬하고 빨래도 하고 밭일까지 싹 마무리해두고 아내를 기다리신다.

    아줌마가 담근 김치는 맛없어도

    보랴 아저씨가 해준 가지 볶음은 된밥 한 공기에 반공기를 더 먹게 한다.

    예배를 절대 빼먹지 않지만
    예배시간에 와서는 맨 뒷자리에 앉아서 말씀시간마다 주무신다
    .

    엎드려 팔에 기대 포근하게 주무시기도 하고

    코를 드르렁 골며 깨워도 모르게 곤히 주무시기도 하고

    깨우면 멋쩍게 뒷통수를 한번 쓱 쓸어주시는 센스.

    웬일로 이번 주에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말씀을 들으시더라는.

     

    월요일 밤은 정말 더웠다.

    워낙 여름에도 솜이불 덮고 자는 내가 이불을 차낼 정도였으니 상당히 더웠던 밤.

    평소에 혈압이 높았던 보랴 아저씨는 밤 새 잠을 못 주무시고

    일어나 산책도 하시고 밥도 챙겨 잡수시고 소일을 찾아 해도
    혈압이 올라 잠을 잘 수 없다고 하시더니 약을 드셨는데 내내 토하셨단다
    .

     

    밤 새 앓던 보랴 아저씨를 나타샤 아줌마는 품에 안고 기도하고

    천국에 가서 보자고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셨단다.

    말이 끝나자 보랴 아저씨는 잠드셨다.

    아저씨는 이틀이 지난 지금도 주무신다. 한번도 깨지 않고.

     

    나타샤 아줌마가 겨울에는 불을 누가 떼겠느냐고 걱정을 하고

    아들이 와서 아버지를 부르며 목소리가 떨려도

    손가락만 움찔하시고 도통 깨지는 않으신다.

     

    그리고 또 한 통의 전화. 늘 그녀의 목에 걸려있는 그 망할 놈의 핸드폰.

    87세 노모를 모셔간 나타샤 아줌마의 동생.

    그 노모의 아픈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해야겠으니 휠체어를 사달라는 전화.

    그 연세에 수술은 안 된다는 아줌마에게 쏟아지는 동생의 비난.

     

    의식불명의 남편과 수술을 해도 안 해도 돌아가실 어머니

    그녀의 들리지 않는 한 숨이 공간을 가로지른다.

    그 아들의 보이지 않는 한 숨이 더해진다.

    그리고 우리 모두 그 한숨에 한 숨을 더한다.

    공명.

     

    그렇게 한 사람의 마음이 울림이 되어 퍼지고 퍼져 우리 모두를 아프게 하는 진동. 진통.

    그렇게 한 사람의 숨이 울림이 되어 퍼지고 퍼져 우리 모두를 숨쉬게 하는 한 숨. 한숨.

    그렇게 한 사람의 눈물이 울림이 되어 퍼지고 퍼져 우리 모두를 떨구게 하는 눈물. 울음.

    공명.


    진통과 한숨 울음으로 채워지기도 하는 날들
    . .

    그리고 그 삶을 살며 공명하는 사람. 우리.

    그래서 다행이고 행복한 우리. 사람.

    공명하는 사람이 우리가 되어 공존하는 삶.

    더운 여름. 뜨거운 가슴.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는 세상에서 말 대신 숨을 내뱉는다. 

    아직 살아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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