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를 키우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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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슬픔을 입고 예쁜일상같은 죽음 2010. 9. 8. 10:51
장례식에 참석 할 수 없지만 그녀의 슬픔에 동참하고 싶었다. 유일한 이방인이었던 곳에서 함께 이방인이었던 그녀는 서로 위로를 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게 하는 사람이니까. 검정색 원피스를 입고 학교에 갔다. 사람들의 입에 발린 칭찬. 예쁘다. 남의 슬픔을 입고 예쁜 사람이라니 참 잔인한 말이지 싶다. 그렇지만 또 맞는 말 우리는 살아서 일상을 살아내야하는 예쁜 사람들. 또 한편으로 드는 생각 얼마나 더 많은 죽음을 지나쳐야 나는 비로서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질 수 있을까? 존재만으로도 찬란하고 반짝거려 예쁜 생명이 허무하게 아스라져 사라지는 꼴을 보면서도 나는 여전히 삶에 애착을 갖고있지 않다. 그런 내가 누군가의 죽음을 지나치며 살아내는 일상 그 일상이 아름답고 행복한 것을 죄스러워조차 않으면서 예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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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같은 죽음일상같은 죽음 2010. 9. 7. 13:44
러시아를 떠난 후로는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미국인이면서 러시아 시골 마을에서 살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고아원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갖고 사는 노엘 내가 떠나올 때도 그녀는 거기 그대로 남아 모두를 놀래줄 만한 결혼을 했다. 그리고 예쁜 딸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했었다. 그랬는데 둘째를 낳았던 모양이다. 오늘, 짧은 쪽지가 왔다. 둘째 딸 리자가 금요일 아침 죽었어. 5주를 살았어. 부검결과는 아직 듣지 못했어. 장례식은 내일 2시 반에 교회에서 있을 예정이야. 우리를 위해 기도해줘. 건조하게 담담하게 슬픔을 그득 담아 그녀는 내게 안부가 아닌 소식을 전해왔다. 딱 다섯 주 세상에 잠시 들러 누군가에게 기쁨만큼의 슬픔을 주고 간 그녀를 슬퍼해야 한다. 그런데 그녀가 이 험난한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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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Write Love On Her Arms (TWLOHA)VeroLogue 2010. 8. 25. 17:54
내 룸메이트 팔에는 흔적이 많이 있다. 그녀가 견뎌낸 진짜로 ‘미친’ 시간들이 남아 있다. 가느다란 팔뚝에 비처럼 내려앉은 그 긴긴 흔적들 끝을 ‘사랑’이라는 단어가 막아주고 있다. 오늘 그녀가 말해준 그 사랑이라는 문신의 의미가 세상을 조금 더 넓게 해줬다. 자해와 자살시도, 공황증과 중독에 시달리던 한 여자가 치료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지만 재활시설들은 너무나 비싸서 치료를 받을 수가 없었다. 그런 그녀를 위해 그녀의 친구는 자기 집을 재활원 삼아 살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 모금을 하고 티셔츠를 만들어 팔아 병원비를 마련하였다. 작은 마을에서부터 시작된 모금 운동으로 그녀는 재활치료를 받았다. 모금액이 병원비를 넘어서자 그녀와 같은 다른 여자를 병원에 보내 줄 수 있었다. 일주일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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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oDic - LunaticVeroLogue 2010. 7. 31. 07:01
Luna is the moon 달빛에 취하면 미친다지 그래서 lunatic이라는 말이 나왔나 봐 오늘 아주 붉은 달이 떴어 늘 여성성의 극치에 있다고 생각했던 그믐이 주홍빛이었어 그 달을 계속 계속 계속 바라보다 보니 또 달이 먹고 싶어졌어 달빛은 기름종이를 통해 보는 것처럼 번져서 정말 오늘 달은 요정을 불러낼 만한다고 생각됐거든 내가 먹어치우지 않으면 누군가는 분명히 오늘 그 달에 취해 미치광이가 될 테니까 나에게 처음 꽃을 줬던 그 사람 머리카락 색깔과 이름이 같던 사람 그 사람의 이름처럼 아련한 색깔 나는 그 사람이 종종 떠올라 왜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버렸을까? 어쩌면 그가 죽던 날엔 오늘 같은 달이 떴을지도 몰라 눈을 뗄 수가 없었어 그 달을 자꾸 보면 내가 미칠 것만 같아서 눈물이 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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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oDic - 존중VeroLogue 2010. 7. 29. 18:06
동네를 걷는다. 목덜미가 타서 따뜸거리고 너무 더워 머리가 띵하지만 걷다보면 마음이 눈이 뜨거운 것들을 찾아낸다. 사람이 사는 집과 사람이 살지 않는 집, 사람이 안에 있는 집, 주인이 마실 나간 집 근처에만 가면 알 수 있다. 숨쉬는 공간의 느낌은 다르다. 그것은 사람의 힘. 생명의 기운. 집집마다 그저 지나치는 길가 언저리마다 흐드러지게 핀 생명체들은 햇빛 받아 빛나 아름답다. 삶이 촌스럽고 지지리궁상이라도 아름다운 이유도 생명의 기운. 필요 없어 베어버린 나무 밑동에서 움트고 새싹이 돋고 뽑아버린 자리에서 모래를 비집고 또 피는 들풀 천대받으면서도 또 또 또 초록잎을 내는 살아있는 것들 그 촌스러운 초록의 존재들이 뿜어내는 품어내는 생명의 기운 생기는 돌고 돌아 사람을 키우고 가르치고 존재하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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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같은 죽음일상같은 죽음 2010. 7. 27. 04:45
올해 수박은 작년보다 맛이 덜하다. 맑고 쨍쨍하던 하늘에서 화사한 소나기가 쏟아졌다가 예쁜 무지개가 피어나곤 한다. 그 하늘을 바라보는 농민들은 한숨을 쉬지만 나는 비가 반갑다. 마음도 쓸어주고 생각도 다독여주니까. 어젠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사는 분들이 한숨을 쉬었다. 누군가의 친척이며 누군가의 친구인 사람이 망쳐버린 수박농사에 끌어들인 돈을 갚을 길이 없어 목을 매고 자살했다고 한다. 또 다른 이는 빚 독촉에 시달리다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했다. 내겐 그저 맛이 덜한 수박이었을 뿐인데 누군가에겐 생명 끝에 매달린 줄이었나 보다. 오늘도 수박을 먹는다. 붉은, 사람의 그것을 닮은 수박 속을 긁어먹는다. 오늘 수박은 달다. 생명도 삶도 살아 있는 누군가에겐 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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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VeroLogue 2010. 7. 26. 23:14
유목민 nomad 일정한 가축을 방목하기 위하여 항상 목초지를 찾아다니며 이동생활을 하는 민족으로, 옛날부터 건조지대 초원이나 반사막지대에 거주한 민족. 나는 늘 떠남을 동경했고 있는 그 자리에서 못 견뎌 했다. 상황이 마음이 떠밀었고 순응하며 떠돌아다녔다. 다만 나의 떠남이 더 나은 것을 위한 것이었던 적은 없었다. 다만 지금 떠나는 것이 맞는다고 느꼈기 때문에 떠났을 뿐이다. 이 땅에 이제 더 이상 나를 먹일 풀이 나지 않아서. 생존을 위해 떠나야 했을 뿐이다. 그것이 삶의 한 형태라고 해서 더 자유로웠던 적도 없었고 더 쉬웠던 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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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같은 죽음일상같은 죽음 2010. 7. 12. 05:10
결국 보랴 아저씨는 돌아가셨다. 오늘은 블라드의 생일. 삶은 이렇게 돌고 돈다. 아저씨의 영정 사진에 검은 리본을 두르면서 말쑥한 아저씨의 얼굴은 처음 본다고 생각했다. 살아 남아야 하는 가족들은 당장 오늘이 지나면 쓸모 없어질 여름 농작물을 수확하고 일을 하기 위해 밥을 먹고 가슴을 치며 눈물을 훔친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보랴인 손자는 오늘도 여전히 장난꾸러기라 웃통을 벗어 젖히고 맨발로 놀러 나간다. 제 할아버지를 쏙 닮아 씩 환하게 웃으면서. 술에 만취한 아저씨가 차도를 향해 휘비적 휘비적 걸었고 옆집 계집애는 빵을 사러 자전거를 타고 쌩 달려간다. 알료나가 김치 담글 배추를 한 차나 실어 보낸다. 나는 보랴 아저씨 영정사진에 검은 리본을 둘렀다. 나는 블라드의 생일 카드 챙겼다. 누군가 세상..